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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어르신 손수레에 광고판 달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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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10 10:26 조회2,2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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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폐지 줍는 어르신 손수레에 광고판 달았더니…
 

리어카 광고판 제작한 사회적 기업 '끌림'

끌림 직원들이 지난 17일 서울대입구역 근처 고물상에서 광고판 손수레를 만들어 폐지 수거 어르신들께 드리고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이 전국적으로 170만 명. 성인 몸무게만한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하나라도 더 주우려 하루 12시간 온 동네를 구석구석 누비는 지라 그 이동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문득 ‘광고판을 달고 돌아다니면 노출이 많아 수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스친다. ‘수레가 좀 더 가벼우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많은 20대 청년들은 그렇게 ‘리어카 광고판’을 제작 및 운영하는 회사를 차렸다.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한 활동이 사회적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건용 씨가 직접 그린 광고판 손수레의 도면. 대당 20만 원가량 제작비가 든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한 고물상에서 대학생들이 망치질을 하고 용접을 한다. 폐지 수거용 손수레를 제작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기업 ‘끌림(cclim)’의 직원들로 서울대 동아리 ‘인액터스’ 소속의 학생들이기도 하다. ‘아연과 철이 합금된 소재’로 만들어 60~70kg 하던 손수레가 40kg 내외로 가벼워졌다. 광고판을 달아 늘어나는 무게를 상쇄하고도 훨씬 더 줄어든 것이다. 수레가 가벼우면 장애물도 재빨리 피할 수 있어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또 3M에서 스티커 반사판을 지원받아 붙였더니 야간에 운행할 때 빛이 나 역시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됐다.

“가볍고 좋아. 광고판을 보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어. 이게 뭐냐고 다들 신기해서 물어 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63세 할아버지는 한 달에 10만 원을 벌다 최근 수입이 5만 원 늘어났다. 끌림은 수레 광고로 얻은 수익의 70%를 어르신들의 몫으로 돌려준다. 10%는 수레를 깨끗이 관리하고 운행일지를 기록해 주는 고물상 업주가 갖고 나머지 20%는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둔다.
 

폐지 가격은 요즘 형편없다. 2015년 국제유가 폭락으로 폐지 가격이 kg당 70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최근 90원으로 다소 회복했지만 들이는 수고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어르신들은 각종 사회적 편견에도 시달린다. 연탄 배달 등 1회성 봉사 활동으로는 이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보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끌림 대표를 맡고 있는 자유전공학부 4학년 이건용 씨는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처음 저희들에게 경계심을 보이셨는데 차츰 수레도 같이 끌고 말씀도 들어 드리면서 마음을 푸셨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30년을 넘게 수레를 끌어 오셨다는 일흔두 살의 할머니가 늘 관절이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사시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할 것 같았던 폐지 수거 노인들에 대한 선입견은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 광고판 손수레는 서울대가 있는 관악구와 광진구를 비롯해 수도권 6개 구에서 70여 대 운용되고 있다. 전국고물상연합회를 찾아가 수레를 끌 어르신들을 확보한 뒤에 환경부 한국순환자원유통센터의 광고를 1000만 원 가량 수주해 지난해 연말 비영리 법인을 발족시켰다. 형편이 가장 어렵고 수레를 많이 끄는 분으로 먼저 선정했다. 어떤 곳들을 돌아다니는지 운행일지를 작성하는 건 광고주의 신뢰를 얻어 내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만난 광고주들은 다들 참신하다는 반응이다. ‘세상에 없던 광고’라는 끌림의 전략에도 상당 부분 동의하는 듯했다. 다만 워낙 생소하다 보니 불경기에 선뜻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캠페인성 정책 광고를 주로 실었다. 이후 중고차 거래 등 일반 광고로 넓혀 갔다.
 

광고 영업을 담당한 국악과 4학년 이지현 양은 “광진구 자양동의 가게들을 모조리 뒤져 겨우 휘트니스와 중고차 매매 광고를 따냈다”면서 “광고 영업이 힘들어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뵙고 나면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는 동기 부여가 다시 된다”고 밝혔다.
 

끌림은 광고 내용에 맞는 디자인도 직접 한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광고 모델을 해 주시기도 했다. 디자인 담당인 언론정보학과 4학년 김광준 씨는 “광고 사례가 지금보다 많이 축적되면 손수레 광고판이 훌륭한 지역 광고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광고 수익을 거의 손수레 노인들께 드리는 구조라 인건비가 없다 하더라도 다른 운영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떻게 충당할까. 정말 다채로운 펀딩 방법이 있지만 공모전이 가장 크다. 벌써 5~6군데에서 입상한 실력자들이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공모전에 선정됐고 ‘함께일하는재단’에 공모해 1차로 1000만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다음의 스토리펀딩에도 올려 현재 200만 원 모금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현(국악과 4), 김승민(중어중문 4), 이건용(자유전공학부 4), 박정현(노어노문 2), 김광준(언론정보학과 4) 학생. 국사학과 4학년 김성완 학생은 사진 촬영 후 도착해 빠졌다.

그럼 무보수로 일하는 끌림 직원들은 회사를 진짜 회사로 생각하는 걸까. 혹시 단순한 스펙쌓기용 봉사 동아리 정도로 여기는 건 아닐까. 이건용 씨는 “일주일에 30시간은 일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면서 “아무리 학업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방학 때는 50~60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몰입한다고. 인액터스의 모든 사업은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학점도 적게 듣는 등 정말 열심히 한다. 시험 기간이란 핑계는 없다.
 

남자 셋, 여자 셋. 무슨 드라마 제목 같이 환상의 한 팀을 이뤘다. 일주일에 두 번 끌림 자체 회의를 하고 업무를 점검한다. 또 하루는 인액터스 모임을 통해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학생으로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아껴 가며 효율적으로 공부와 일을 병행한다.
 

폐지 수거는 노후자금이 부족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상당수가 종사하는 엄연한 자원재생 사업이다. 이건용 씨는 “170만 어르신의 네트워크가 구축될 수 있다”면서 “끌림 사업의 가능성을 볼 때 졸업 후 직업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손수레에 GPS를 달아 폐지 수거 양태를 수집하면 관심 기업들이 있지 않겠냐”는 야무진 꿈도 살짝 드러냈다. 폐지의 대부분이 각종 온라인 쇼핑의 포장박스여서 모종의 빅데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폐지에 생계를 의탁하는 소외된 노인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챙겨 드리고 싶다는 청년들의 마음이 참 곱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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